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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정책

대한민국 국방부

[6·25 전쟁 60년] 임진강을 넘어온 적 (39) 도시는 병사를 잡아먹는다

북한군 서울서 사흘 지체 … 김일성 “뼈아픈 패착” 훗날 토로
 
‘도시는 병사를 잡아먹는다’. 전쟁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 말의 뜻을 쉽게 이해할 것이다. 부대가 도시에 오래 머물면 전투력을 상실하기 십상이라는 뜻이다. 도시는 평안함의 유혹을 풍기는 곳이다. 향락도 그 안에 숨어 있어 장병의 마음을 잡아끈다.


북한 공군기가 1950년 6월 28일 김포공항에 계류해 있던 미 공군 수송기를 폭격해 화염이 일고
있다. 국군은 한강 남쪽 시흥 지역에서 지연작전을 펼쳤다. [백선엽 장군 제공] 

평안함에 묻혀 안일(安逸)함을 생각하다 보면 병사들은 탈선하기 쉽다. 전선의 살벌함과 피곤함이 싫어지면서 전투력이 크게 깎인다. 6월 28일 서울에 진입한 북한군이 그랬다. 그들은 서울에서 사흘이라는 시간을 지체했다. 6월 25일 아침 거침없이 밀고 내려왔던 그 기세가 크게 꺾인 것은 물론이다. 그 이유는 지금도 자세히 알 수가 없다. 단지 추측으로는 병사를 잡아먹는 도시병(都市病)에 걸려 버린 것으로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전쟁이 끝난 뒤 김일성은 북한군이 서울에 머물렀던 사흘을 반성하는 발언을 했다. 일종의 자아비판(自我批判)이었다. 북한군의 서울 체류 사흘은 그만큼 그들에게는 뼈아픈 전략적 패착이었던 것이다.

북한의 판단 실수도 있었지만, 아군 입장에서 보면 6·25 전쟁 중 지연전의 개념을 확실하게 세운 기간이었다. 그 주인공은 김홍일 소장이었다. 그는 중국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군대인 국부군(國府軍)에서 활동했던 분이다. 김 장군은 국부군에서 별을 두 개까지 달았다. 외국인으로서 그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은 드물다. 그만큼 전쟁 국면을 크게 아우르는 능력을 갖춘 분이었던 것이다.

  
젊은 시절의 김홍일 장군. 
 
김 장군은 평북 용안포 출신이다. 일제 시기 민족주의 운동을 주도했던 고당(古堂) 조만식(曺晩植) 선생의 가르침을 받으며 오산중학교를 마친 뒤 중국 구이저우(貴州)의 군사학교 격인 강무당(講武堂)에서 수학했다. 국부군 소장으로 있다가 해방을 맞아 중국 국민당 정부의 동북지역 한국교민사무처 처장까지 지냈다. 조만식 선생은 생전에 가끔 “중국 군대에 왕일서라는 유명한 조선 장수가 있다”고 말했다. 바로 김홍일 장군이었다. 김 장군은 중국에서 활동하던 시절에는 ‘왕일서(王逸曙)’라는 중국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덕망과 리더십이 빼어나 따르는 군대 후배들이 많았다.

[중앙일보] 기사 내용 더 보기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4019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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