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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ㆍ국민참여

고마워요, 우리 국군

고마워요우리국군

2016년에 12사단 중령,대위의 일입니다.
안녕하세요. 우선 대한민국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입대날짜를 어겼던 경험이있습니다.

그래서 벌금을 낸적도 있습니다.

지금이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지만
두분이 이혼하시고 할머님 밑에서 자랐고
할머니께선 제가 성인이 된 이후 돌아가셨습니다.

군대영장이 나왔지만 2번연기신청을했습니다.
군대를 갔다오면 나와서 지낼곳도 뭐도 없었기에
돈을 조금이라도 벌어놓고 전역한 뒤
월세방이라도 잡아야 할 돈이 필요했습니다.

입대날짜가 다됐습니다.

그런데 저는 뜻밖의 사람과 마주하게됐습니다.

남들은 가족이라는게 당연스럽겠지만
저는 저의 아버지와 몇년의 시간을 따로 지내왔고
연락조차 오간게 없었습니다.

대뜸 아프다고 연락 오셨습니다.

암이셨습니다.

그래도 아버지였는지 아니면 할머니때와 같은
후회를 하고싶지않아서인지
모시고 지방에서 서울병원으로 갔습니다.
흑색종양. 호주에서는 흔한병이라고 들었고
국내에서는 희귀암이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괜찮았습니다.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시대가 시대인만큼 호전될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으로와서 군관련된 곳에 전화했던 것 같습니다.
연기신청을 하기위해서
더 이상 연기 할 수가 없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생계유지명목으로 면제되는 방향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병간호하며 병원비마련도 해야하니
면제서류들을 준비했습니다.

수십장의 서류들이 필요하였고, 그 중 아버지의 병관련
서류들도 필요하여 서울병원에 갔다왔습니다.

아버지는 갑자기 팔 한쪽이 움직이지않으셨을 시점이었습니다.

입대은 306보충대로 받았지만 가지못했습니다.

그러고 아버지는 갑자기 말하는게 어눌해지셨습니다.

또 한주가 지나니 아버지는 걷는것조차 못 하셨습니다.

병원에서 호스피스라는곳을 이야기해주셨고
그게 뭔지도 모르고 갔습니다.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해주셨고
내용인 즉, 암환자분들이 남은 여생을 그나마 편히 있다
가는 곳 이라고 들었습니다.

호스피스에 들어가려면 서명을해야하는데
그 중, 호흡이 멎더라도 cpr을 하지않는다는겁니다.

슬프지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제게 가장 힘듦을 준사람이었기때문입니다.

호스피스에 들어갔습니다.

일을하고 돌아오면 아버지께서 늘 자고 계십니다.
옆에서 쳐다보는데 숨을 쉬지않으셨습니다.

간호사를불렀고 의사도와서 말합니다.
지금 가족분들 다 모셔야할 것 같다는 말과 함께
병원침대를 끌고 1인실로 가신답니다.

저는 미친듯이 아버지배위에 올라가서 심폐소생술을 했습니다.
체감으로는 30분 1시간 3시간 했던것같습니다.
짧은시간이 길게 느껴졌고 땀과 눈물이 흘러내리며
쳐다보고만있는 병원관계자들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아버지 장례를치르고 면제받기위한 서류들을
신청하지않았고 저는 전화했습니다.
가장빠르게 입대날짜를 알려달라고.
그러고 장례식 끝난 시점부터 2주도 안된시간에 입대영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02보충대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라를 지키기위해, 남자니까 당연하게, 국방의 의무를
하러간게 아닙니다.
제가 사회에있으면 무슨일을 저지를지 저도 저를
잘 몰랐기에 통제해줄 곳이 군대뿐이었습니다.
도망치듯 군대로갔습니다.

나이가 많이 먹고 간 군대라
행군할때 동기들보다 뒤쳐지지않게 낙오생이보이면
동기들끼리 군장도 들어주고 그렇게 훈련병시간을 보냈습니다.

훈련소에서 어떤분이 따로 불러서 상담할때가있었습니다.
왜이렇게 늦게왔냐 등등의 질문을했고
그냥 돈벌다보니 늦어졌다로 일축했습니다.

그리고 자대배치를 받았습니다.

12사단 65포병

이 이야기를 하려고 앞서 길게 제 이야기를 했습니다.

2016년도 12사단 65포병 이선언중령님, 임재범대위님

나이가 좀 찬 상태에서 군입대를 했기에 힘듦이있었습니다.
군대만오면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
몇달을 저는 제 이야기를 하지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말. 임재범대위님께서 관사로 불러
어디선가 사오신 음식을 먹이셨습니다.
한번 두번 세번 몇번을 그렇게 하시면서도 단 한번도
제 이야기를 묻지않으셨습니다.

정확히는 아니지만 네가지금 힘들고있다는건 알고있다.
의 눈빛과 행동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몇번의 밥에 저는 앞서 쓴 글의 제 이야기를 하게 됐습니다.

그다음에는 외박을 맞추어 바람도 쐬게해주셨고
주말은 절에가자고 하셨고 스님과 차를 마시며 많은
대화들을 했습니다.

제 심리상태가 불안정해보였는지
아니면 슬퍼보였는지 지속적으로 꾸준히
그렇게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있다가 사회에 나가면 더 힘들수도있다고
심리상담도 받도록 도와주셨고

가족보다 더 지극정성으로 저를 봐주셨던 것 같습니다.

있는동안 모든훈련은 다 같이 받았습니다.
그럴때마다 항상 옆에서 장난도쳐주시고 응원도
해주시며 길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사회에서도 따로연락을 꾸준히하며 6년이지난 시간동안
꾸준히 서로 연락을하며 안부를 묻고있습니다.
사회에나와서도 이혼했던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어머니쪽에있던 친 누나마저 죽었고
많이 힘들었던시기에

훈련이 끝난 뒤 멀리 지방까지 찾아와서 밥을 사주러오셨습니다.
몰래 제가 계산하면서 말씀드렸습니다.
대위님이 진짜 멋있는 사람이라고 꼭 말씀드리고싶었다고.
건방질수있는데 식사라도 한번 꼭 대접하고싶어서
제가 산거니까 너무 혼내지마시라고.

그렇게 힘든시기때 항상 곁에있어주셨던 것 같습니다.

매 해 빠지지않고 연락주시고 연락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벌써 6년이란시간동안 감사합니다.

항상 힘을 얻습니다. 임재범대위님

제 사정을 아시며 힘주신 이선언중령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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